카테고리 없음

우표 이야기 (24) - 구한국우표 수집가들의 종합 정보

littlejoe 2022. 1. 10. 08:00

초기 국내 구한국우표 수집가들

우표수집이 처음 한국에 소개된 것은 구한말-대한제국 시대이며, 사업이나 국가 외교업무 등으로 대한제국에 온 많은 외국인들이 그 시초로써 여러 자료가 있으나 한국 사람으로서 우표수집을 본격적으로 한 자료는 남아 있지 않고 소개만 된 정도이다.

일제시대 당시 한국인이 구한국시대의 우표를 소유하고 있는 것을 위험인물로 간주하던 것이 일제치하였고, 한국민의 전반적인 생활 여건이 취미생활을 즐길만한 여유가 없었던 이유로 구체적인 우취활동 기록은 보이지 않고 있다.

한국 최초의 우표수집가는 이 상재와 남궁 억이라고 한다.

 

이 상재

이상재(李商在, 1850 10 26-1927 3 29) 충청남도 한산에서 고려시대 학자와 정치가 이색의 후손으로 태어나 대한제국 의정부 총무국장을 지냈다. 그는 조선 후기, 대한제국, 일제 강점기의 개화파 운동가, 교육자, 청년운동가, 독립운동가, 정치인, 언론인이다.

이상재는 홍영식의 귄유로 1884 11 18일 우정총국이 창설될 당시 인천분국장을 역임하던 때 문위우표를 수집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확실한 증거는 남겨져 있지 않다.

 

남궁 억

남궁 억(南宮 檍, 1863 12 27-1939 4 5)은 대한제국 조선 황조 말기의 교육자, 계몽운동가이며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자 교육가, 사회운동가, 시인, 저술가, 작사가, 작곡가, 언론인이다.

갑신정변의 실패로 우편제도가 중단되고 1895년에 을미개혁으로 다시 재개된 당시 독립협회 수석총무였던 그는 태극우표, 대한제국 우표 등 새 우표가 나올 때마다 그는 하나씩 구입, 보관했고, 이렇게 해서 1895~1904년 발행한 우표 20매를 모았다.

그가 한일합방후 강원도 홍천에 내려가 무궁화 묘목을 심고 무궁화 보급운동을 할 때 고이 간직해온 우표 20매를 산기슭에 숨겼다가 68세되던 1931년 당시 시가로 3000원에 이르는 이 우표들을 연희전문학교(연세대) 도서관에 기증하여 했다고 2004 3 4일자 연세소식은 전하고 있다. 그 우표들은 현재까지 계속 보존되고 있고, 이로서 그는 기록적으로 국내 최초 우표 수집가가 되었다.

 

이후 양 계삼 (대한적십자사 총재), 임 동혁 (이화여대 교수), 강 범식 (한국은행 참사), 윤 종호 (조흥은행), 이 정덕 등이 우표수집가로 이름을 올렸다.

 

 

 

당시 조선에 있던 일본 수집가들:

고스카의 마카도 우표교환회

한일합방 이후 일제시대에는 1918년 경북 김천에서 일본인 고스카(소총성치)가 우표교환 등을 목적으로 미카도(Micado)라는 이름의 교환회를 창립하여 동명의 일문, 영문판 월간지를 발간하였다.

 

요시다 신이찌(吉田新一)와 부산 우권클럽과 국내 최초 우표전시회

1920년대에는 부산 대창동에서 서점을 경영하던 요시다 신이찌(吉田新一)를 중심으로 부산 우권구락부를 결성하였고, 그가 주동이 되어 1928년 부산 우권구락부에서 제7 공립소학교(현 동광초등학교)의 교실 한 칸을 빌려 국내 최초로 우표전시회를 개최하였.

그는 1936년에 자비로 구한국 통신사업 합동전사고” (4x6 106, 300부 한정판)을 발행했는데, 한국 우정을 일본이 강제접수한 경위를 상세히 기술했고, 연구적인 기사와 특히 수록된 사진 중 구한국 시대 미발행 우표인 50분도의 원도와, 우리나라 우편 창시의 공로자인 홍 영식 선생의 친필인 유묵 등과 구한국 시대의 엔타이어가 수록되어 있다.

 

가야다: 1928년 월간지 수집구락부 발행

 

金井豊報: 초동병원 운영

 

高木定一: 충무로 2가에서 가방점 운영

 

宇野眞一: 을지로 3가에서 개업의

 

池田寶: 부산에서 1928 “Corea Collector Club”을 창립, 동명의 월간지를 발행하다가 1943년 봄부터 월간지명을 대동아”, 발행인 성명을 池田虹聲(부산부 행정 2)으로 변경 발행했다.

 

殿村弘: 경북 달성군 옥포초등학교에 재직한 그가 주제로 광복되던 날까지 확실히 존속하던 오령천공절수회가 있었다.

 

일본 우편절수회: 광복 전 일본에서 우표수집의 가장 대규모였던 일본 우편절수회(체신성 산하) 1939~1943년까지 존속, 회원 2,300여 명, 사무소는 일본 체신성 내에 설치하였으며, 월간지 郵便切手 [우편절수]’는 아트지 국판 30여 면에 영문기사 6면을 포함한 호화로운 것으로서 총 57권을 발행하였다. 당시(1943) 가입했던 회원명부에 의하면 광복 전에 국내에 거류하는 회원은 한국인, 일본인 그리고 서양인을 합하여 23개 지방에 63 명이 있었는데 그중 한국인은 함흥과 청주에 각 1명이 있었다.

서울
24
무산 , 개성 , 장승포
부산
9
군산 , 나진 , 진해
평양
3
△중화 , 남양 , 희천
인천
2
△회령 , 나주 , 포항
원산
2
△덕원 , 강경 , 명천
함흥
2
마산 , 목포 , 달성
청진
2
상기각 1 명 계 63

(▲은 한국인 1명 포함, △은 서양인 선교사 )

 

 

자신들을 위하여 수집품을 만든 이들

 

국내인

박동 법어학교 니 능하 씨

박동법어학교는 조선 고종 33(1896) 프랑스인 에밀 마르텔 (Emile Martel, 馬太乙; 1874~1949) 서울 박동(磗洞), 지금의 종로구 수송동에 세웠던 관립 프랑스어 학교이며 광무 10(1906) 폐교되었다.

이 능화(李 能和, 1869~1943)는 충북 괴산군 이도면 수진리에서 유학자 관료로서 경상도 관찰사, 이조참의, 법무협판 등을 지낸 이 원긍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총독부의 학무국, 이왕직(李王職)에 근무하다가 외국어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한 부친의 권유로 1895년 (고종 32년) 관립법어학교에 입학한 그는 성적이 뛰어나 졸업전 1897년 (광무 1년) 교사로 임명되어 우리나라 사람으로 최초로 불어를 가르쳤고, 1906년 10월 24일 교관 이 능하는 법어학교 학교장으로 임명되었고, 1908년 (융희 2년) 1월 통감부의 학제개편에 따라 법어학교, 영어학교, 일어학교 등이 관립한성외국어학교로 통합된 이후 에도 학감으로 1911년 (융희 5년) 일제의 조선교육령에 의해 폐교되기까지 근무하였다.

그는 번역위원으로도 활동을 많이 하였고, 1907년에는 국문연구소 위원으로 활약하였다. 1912년 사립능인보통학교 교장으로 취임했으며, 1912년 8월 한국병합기념장을 받았다. 1922년 그는 조선사편찬위원으로 위촉되어 후에 그를 친일논란에 휩싸이게 되었다. 그는 탁월한 학자로서 많은 저서를 남겼으나 친일이란 그늘아래 평가절하된 인물이다.

 

“대한 ” 주색 가쇄 태극 10 푼 우표

“SEOUL 21 FEVR 1900 COREE” 외체 일부인

수취인 : 서울 박동 법어학교 니 능화 씨

 

 

 

순화궁 모퉁이 집 또는 종현성당 앞 니 인규 씨

주색 "대한" 가쇄 태극 25푼 우표가 부착된 봉피

“SEOUL 10 JAN 1900 COREE” 외체 일부인

수취인 : Monssieur Yi Inkyou; Yi-moon an, Jyong-no, Seoul

순하궁 모퉁이 집 인규 (도장)

인천우체사에 한 령수 씨

 

자 주색 첨쇄 태극 5푼 위

조선 서울 건양 원년 십이월 팔일 화요일 한 장 값 5푼 독립신문 위

“SEOUL 16 AVRIL 00 COREE” 외체 일부인 소인

받는이: 한 령수 씨 인천 우체사에

 

 

 

 

 

 

 

남문안 성사동 림 시엽 씨

 

흑색 대한첨쇄 태극 두돈5푼 우표 위

대한 광무 삼년 십일월 십삼일 월요일 황성신문 위

“SEOUL 16 AVRIL 00 COREE” 외체 일부인 소인

받는이: 남문 안 성사동 림 시엽 씨

 

 

 

 

외국인

 

진고개 파성관 또는 종현 성당앞 트레물네 씨

대한제국 우표가 붙은 엔타이어를 수집하면 트레물레 씨(Monsiuer Trémulet) 이름의 봉투를 많이 보게 된다. 그는 조선 최초 광산학교 설립자였다.

조선은 개항 이후 광업 부문에도 근대식 기술교육이 실현되었는데, 1900년 9월 4일에 실업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배경으로 「광무학교관제 鑛務學校官制」가 반포되었다. ​

프랑스인 트레물네(M. Tremoulet)는 1899 파리만국박람회 한국측위원이었는데, 그것을 인연으로 하여 1900년 10월 13일 광무학교 계약서에 서명하였고, 1900년 12월 29일 내한하여 광무학교의 초대 교장으로 임명되었다.

트레물레는 광산개발을 책임지는 감독의 직위로서, 월 4백엔(천프랑)의 봉급, 근무 3년 후 6개월 간의 휴가, 광산총국장인 내장원경의 지시 아래 재정과 광산개발을 책임지면서 광산학교장의 임무를 맡게 되었다.

 

“일”자 주색 첨쇄 “대한” 주색 가쇄, 태극 5푼 우표 위

“SEOUL 16 AVRIL 00” 소인

전면: 태극 초판 9 블락 + 1 우표

후면: 태극 재판 10 우표 블락

대한제국 농상공부 우정총국 봉투

수취인: 종현성당 앞 (박물관장) 트레물네 씨

 

 

 

 

알네베크: 프랑스와 대한제국 중간 인사, 한국 최초 사진엽서 제작자

프랑스인 샤를 알레베크(Charles Aleveque; 한국명은 안례백(晏禮百)는 프랑스와 대한제국 중간에서 여러 역할를 하였다. 그는 한국 최초의 알레베크 사진엽서 를 만들었으며, 역시 최초인 프랑스어 - 한국어 사전 을 편찬하였고, 파리 만국박람회 대한제국 정부 대리인을 담당하였다. ​

그는 서울 정동에 설립된 관립 외국어학교의 프랑스어 교사도 맡았으며, 1901년 최초의 불한 사전인 '법한자전(法韓字典)'을 편찬하였다. 프랑스어 제목은 ‘Petit Dictionnaire Français-Coréen’이다. 머릿말에 “À Monsieur Collin de Plancy Ministre de France à Séoul”라 쓰여있어 당시 주한 프랑스 대사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Collin de Plancy)에게 바친다고 하였다.

그리고 한국 우정사와 연관도 있는데 한국 최초의 사진 엽서가 바로 알레베크 사진 엽서이다.

1899년 프랑스 우체 고문인 클레망세(E. Clemencent)가 한국 의 여러 모습을 담은 사진 엽서 를 판매하면 재정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건의를 하여 대한제국 정부가 샤를 알레베크에게 그가 촬영한 사십 여 장의 궁궐과 풍속 사진  엽서 로 제작해 줄 것을 의뢰하였다. 이것이 이른바 알레베크 사진 엽서 로 한국 우정사 최초의 사진 엽서로서 가치가 크다.

총 48장으로 여러가지 당시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사진 들로 구성되어 있어 구한말 풍속사에 귀중한 자료이다. 한국에서 찍은 사진을 프랑스로 가져가 인쇄하여 제작하였으며 1900 파리 엑스포 때 한국관 기념품 으로 팔았다.

일부는 우리나라에 가져와 대한제국 독수리 보통 우표를 붙여서 판매하였다. 48장 중 명성황후 국장 사진이 꽤 된다. 엽서의 형식은 사면의 백색 테두리안에 사진이 있는 형식이고, 오른편에 '알네ᄇᆡᆨᄭᅳ 법국 교사 셔울 ᄃᆡ한'이라는 국문이 쓰여 있으며, 왼편 맨 위쪽에 'Séoul (Corée)'라는 불문, 아랫면에는 엽서 번호와 사진 설명이 적혀 있다.

독수리 4전

“SEOUL 8 MAI 05 COREE” 소인

"알네백그 법국교사 서울 대한"이라고 한글 기재된 사집엽서

받는이 : Mademoiselle Grenet Insletulion St. Agnes Lucern, Suisse

“SHANG-HAI 11 MAI 05 CHINA” 경유지 소인

“LUCERNE 15 VI 05” 도착지 소인

 

 

 

 

군츠부르크 남작: 조선말 러시아 외교관, 구한국우표 봉피수집품들

세상 돌아가는 걸 모르고, 자기나라 지킬 힘 없이 침탈하려는 외세의 각축장이 되어 풍전등화 같은 조선....!

1895년 10월 8일 명성왕후가 일본 공사 미우라(三浦梧樓)가 일본인 낭인과 훈련대를 경복궁에 침입시켜 민비를 시해하는 을미사변 후, 일본과 친일세력으로부터 경복궁에 감금 당한 고종은 명성황후처럼 자신도 언제 죽임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신변의 위협으로 탈출하려 했다.

​첫 번으로 1895년 11월 28일 미국 공사관으로 피신하고자 한 시도가 밀고로 실패했다.

그 후 1896년 2월 11일 친러세력과 러시아 공사가 공모하여 비밀리에 고종을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기는 아관파천(俄館播遷) 사건이 일어났다. 아관은 아라사(러시아) 공사관을 말하며 정동에 위치하였다. 이로 인해 친일정권이 무너지고,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에 머무르는 1년 동안 조선 정부의 인사와 정책은 러시아 공사와 친러파에 의하여 좌우되었다.

경원·종성 광산 채굴권, 인천 월미도 저탄소 설치권, 압록강 유역과 울릉도 삼림 채벌권 등의 경제적 이권이 러시아에 탈취당하였고, 이 밖에도 러시아는 알렉시예프(Alexiev, K.)를 조선 정부의 탁지부 고문으로 앉히고 조선의 재정을 마음대로 휘둘렀다.

그리고 러시아 황제 대관식 때 열린 로바노프·민영환(閔泳煥)비밀회담에서 러시아측은 5개조의 원조를 약속하는 조건으로 조선에게 17개조의 이권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러시아는 일본과 로바노프 - 야마가타 협정 즉 양국이 조선을 공동 점거할 수 있다는 합의도 했다.

파천 1년 만인 1897년 2월 20일 경운궁으로 환궁 후 고종은 독립협회의 진언을 받아들여 그해 10월 12일 황제즉위식을 갖고 국호를 대한제국(大韓帝國), 연호를 광무(光武)라 고치고 대한제국을 대내외에 선포하였다.

“개항 이후 근대적인 문물도입과 기타 개혁정책을 실현함에 있어 재정지출이 급격히 증가하게 되었다. 그러나 한말 조선정부의 국가재정은 타율적인 개항에 따른 막대한 財源의 유출과 징세기구의 혼란·幣制의 문란·國債의 존재 등의 이유로 매우 궁핍한 상태에 있었다.이 같은 조선정부의 만성적인 재정궁핍의 타개책을 모색하는 가운데 1880년대부터 정부의 鎮錢事業과 함께 借款導入·鑛山開發問題가 제기되었다.”

“헌트는 1897년 모오스(J. R. Morse)로부터 운산금광을 인수하였다. 그는 1898년 이래 광산운영권을 얻고자 한국정부에 차관제의를 한 바 있고, 1903년 러시아 관리 군츠부르크(Gunzburg) 남작 과 공동으로 광산사업을 계약하는 등(Hunt-Gunzburg 協約), 당시 이권획득에 부심하던 알렌 공사와 긴밀하게 차관제공을 통해 광산권을 획득하고자 했다.” (韓末 日本의 借款攻勢와 鑛山接近에 관한 硏究; 劉 元東 저)

여기서 볼 수 있는 러시아 관리 군츠부르크(Gunzburg) 남작 이 바로 자신을 위하여 여러 수집품들을 만든 인물이다.​

이화 3전 우표; 봉투 위

“CHEMULPO 27 OCT 02 COREE” 외체 소인 앞 뒷면

“漢城 光武 六年 十月 二十七日 丙遞” 원일형 일부인 소인

받는이 : Baron Gunzburg, SEOUL

漢城 社稷洞

 

샬럿 오버: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 구한국우표 봉피수집

 

"CHEMULPO 제물포 6 DEC 02 COREE" 외체소인

봉투의 앞 면에는 태극 25, 50푼, 이화 2리 (x2), 1, 2, 3, 4, 5, 6, 15, 20, 50전과 황제 즉위 기념 3전 우표 등 14 우표들이 붙어 있고 “Chemulpo 6 DEC 1902 COREE” 외체 소인이 찍혀 있다. 추가로 944라는 번호가 손글씨로 쓰여 있는데 이는 뒷면의 찍혀 있는 등기우편 “R CHEMULPO No 944”와 같다.

뒷면에는 등기우편 소인과 함께 제물포 소인이 하나 더 찍혀 있고, “REGISTERED Dec 31, 1902 SEATTLE, WASH” 도착지 소인이 찍혀 있다.

 

 

현대의 구한국 우표 수집가

 

국내 수집가들

현대의 국내 구한국우표 수집가들에는 간 윤홍, 김 갑식, 이 종구, 장 세영, 김 성환, 현 재선 등이 있다.

고바우 만화로 유명했던 김 성환님은 구한국시대 우정사 - 김 성환 소장품집 1984, 139, 500부 한정판을 출판했고, 그의 많은 진귀한 엔타이어 수집품들이 실려 있다.

이들의 진귀한 수집, 수장품들 중 사용제 문위우표들은 다음과 같다.

 

5문 京 10월 3일 간 윤홍 소장품

5문 10월 11일 간 윤홍 소장품

5문 10월 9일 김갑식 소장품

5문 10월 10일 간 윤홍 소장품

10문 10월 11일 장 세영 소장품

10문 10월 11일 간 윤홍 소장품

10문 10월 16일 김 성환 소장품

10문 10월 13일 김 갑식 소장품

 

 

국외 수집가들

현대의 국외의 대표적인 구한국우표 수집가들에는 일본의 이치로 콘도, 미주하라 메이소가 있다.

 

이치로 콘도의 수집품들은 1994112일 스위스의 David Feldman 경매회사에서 특별 카타로그로 제작, 일괄 판매되었다.

David Feldman 경매회사가 Ichiro Kondo의 구한국 우표 수장품들을 경매할 때 만든 독립적인 특별 카타로그

 

 

 

미주하라 메이소의 수집품들은 그의 저서 “KOREAN POSTAL HISTORY 1884-1905”로 널리 알려졌고, 그의 모든 수장품들도 2013113일 홍콩의 SPINK CHINA 경매회사를 통하여 일괄 판매되었다.

Mizuhara Meiso의 구한국우표 1884-1905 수장품집

 

Spink 경매회사가 Mizuhara Meiso의 구한국 우표 수장품들을 경매할 때 만든 독립적인 특별 카타로그

희귀한 우표수집가들의 수집, 수장품들은 처분되어 흩어져버리기 전에 이와같이 특별 카타로그로 제작되어 자료로 보관된다.

 

5문 10월 9일 Ichiro Kondo

10문 10월 10일 Ichiro kondo

 

이 수집품은 미주하라 메이소의 책자 표지에 실렸었고, 홍콩의 스핑크 차이나 경매회가를 통하여 420,000 홍콩 달러 - 미화 약 54,000 달러에 낙찰되었다.

그러나 김 재승님에 의해 소인위조로 판명되었고, 아래의 우표도 위의 소인위조품의 좌측에서 분리된 것으로 판명되었다.

 

 

 

 

 

구한국 우표 관련 저술가들과 저서

아는 것이 힘이다. 자료가 없으면 진위구별과 적정가격을 알 수 없다. 구한국우표를 수집, 연구하거나 관심이 있는 이들은 어떤 전문가들과 저서들이 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다음과 같은 저술가들과 그들의 저서들은 소유하지 않더라도 관련정보라도 파악되는 것이 기본이다.

 

조선총독부 체신국 조선통신사업 연혁소사 1914, 1905-1913 까지, 174.

 

吉田新一 구한국 통신사업 합동전사고” 1936, 4x6 106, 300부 한정판.

 

진 기홍 舊韓國 時代 郵票 郵政 1964. 경문각, 289.

 

체신부 우정100년기념 - 한국의 우표 1984, 753.

 

김 성환 구한국시대 우정사 - 김 성환 소장품집 1984, 139, 500부 한정판. 그의 많은 진귀한 엔타이어 수집품들이 실려 있다.

 

김 재승 구한국우표의 실상 - The Facts of Korean Classic Stamps” 1998, 영문판, Inje University, 406 pages. 이 책은 구한국 우표 전반에 걸친 귀한 연구 자료이며 특히 한국 최초의 문위 5 10문의 진위를 가린 역작이다.

 

김 갑식 한국우표 이야기 2008, 개정판, 299.

 

ICHIRO KONDO: 그의 수장품들은 1994 11 2 David Feldman Philatelists  Auctioneers Geneva, Swiss에서 “Korea Classic Postage Stamps and Postal History”라는 82쪽의 별도 catalog로 제작되어 경매로 판매되었다.

 

MIZUHARA MEISO: “KOREAN POSTAL HISTORY 1884-1905” 1993, Japan Philatelic Publications, 571 pages. 그의 수집품들은 Spink China Aucution Company에서 2013 1 13일 별도 catalog로 제작되고 경매로 판매되었다.

 

HELEN K. ZIRKLE “Philatelic Handbook for Korea, 1884-1905” 1970, Korea Stamp Society, 128 pages.

 

JAMES W. KERR “Korean Kingdom and Empire Philatelic Catalog and Handbook” Second Edition. 1990, Korea Stamp Society, 86 pages.

 

 

 

 

 

 

구한국 우표 감정사들

 

Peter Holcombe와 그의 감정서

(김 재승 님의 소인위조로 판명나기 전에 진품으로 판정하였다.)

 

 

 

 

James W. Kerr와 그의 감정서

(김 재승 님의 소인위조로 판명나기 전에 진품으로 판정하였다.)

Florian Eichhorn과 그의 감정서

Florian Eichhorn

E-mail: minatobay@t-online.de

Adolfsallee 17

65185 Wiesbaden, Deutschland

Specialist for:

Japan (without occupation Issues 2nd World War), Corea

 

 

 

 

 

Scheller와 그의 감정 필 싸인 - 왼쪽 맨 밑 부분

 

 

 

 

Kazuyuki Inoue

E-mail: doctor@jipp.jp

4-25-8, Sakuragaoka, Setagaya-ku

156-0054 Tokyo, Japan

Specialist for: Japan, stamps and postal history; Postal History of Foreign Post in Korea and Korean Dynasty (1879-1910); Tonga postal history; wreck and crash covers (especially Japan)

 

 

 

 

 

 

 

이 기사에 실린 모든 실례들은 필자의 소장 수집품들이다. 이 기사에서 해당 사항의 상세 설명이나 여기 실린 수집품들 이외의 다량의 다른 필자의 수집품들은 아래 website들에서 볼 수 있다.

이치로 콘도와 미주하라 메이소의 구한국우표 전문 수집품들이 일괄 경매로 뿔뿔이 흩어진 후에 구한국우표의 전문 수집품들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필자는 온라인에서 누구나 필요한 이들이 구한국우표들을 열람, 연구, 참고할 수 있도록 전 세계 유일의 구한국우표 온라인 전시를 제공하고 있다.


필자의 Naver blog https://blog.naver.com/coree1884

Korea Stamp Society (KSS) website - https://koreastampsociety.org/

 

2021311

필자: 이 영

 

 

 

(아래의 내용은 오 지연 님께서 이메일(Oct 6, 2021, 11:06 AM 33odol@naver.com)로 제게 보내주신 글인데 이는 구한국우표 수집가들에 관한 귀한 참고자료라서 저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까워 관심있는 분들과도 함께 나누고자 여기에 올립니다. 오 지연 님의 양해를 구합니다. 필자 이 영)

 

대조선과 대한제국 우표 수집가들

 

naver blog에서 흥미롭고 훌륭한 글들을 보았습니다.

구한국 우표 수집가들...........저는 대한제국으로 부릅니다.

제가 아는 내용을 첨부합니다.

** 故 진 기홍: 대조선과 대한제국 우표의 기초와 기본을 개척.

저서 <구한국 시대의 우표와 우정> 외 여럿

전통우취: 故 강 윤홍: 세계전 금상. 수집품은 대학에 기증한다고 하셨음.

전통우취: 故 이 종구: PHILAKOREA’94 국내 대상(大賞 Grand Prix National)

CHINA’99 중국 세계전 CHAMPION급 대상(大賞 Grand Prix D’Honneur)

아들이 보관 중.

전통우취: 故 김 요치 PHILANIPPON’2001 국제 대상. 김 갑식씨가 판매

전통우취: 故 곤도 이치로 (일본) PHILAKOREA’84 (Grand Prix National)

BANGKOK’93 (Grand Prix D’Honneur) 1994년 FELDMAN SA 경매

전통우취: 발버그(Börje Wallberg 스웨덴. 1923~2014), 경매

전통우취: 장 세영: PHILAKOREA2002 국내 대상. 2014년 판매

전통우취: 한 철규: PHILAKOREA2014 국내 대상(Grand Prix National )

전통우취: 일본 Iwasaki Zenta

전통우취: 故 송 부종 (동양우표사), 판매

** 미공개: 송창두(미국) daum cafe(우표와 취미)에 수집품 공개

** 미공개: 조병채, 오병윤

엽서: 故 이 종구, 故 정 종현

엽서: 김 영길: 세계전 Gold?

엽서: 가와가미(川上 弘. 일본) 세계전 gold?

우정사(우편사): 故 김 성환 (가족이 보관), 故 미즈하라 메이소(일본): 공개 옥션 (2013 Spink)

우정사: 김 영길: 세계전 금상

우정사: 이노우에(일본): 세계전 대금상 3회 수상

** 작품은 없으나 연구:

故 진 기홍, 故 김 재승

오 병윤: 작품은 일정 시기(1905-19010) (1910~ )

신 용석(조선일보 파리 국장). 주로 일부인을 수집하여 200 여 우체사를 모았는 데 수집품을 금고 채로 도

난 당했음. 아직까지 공개 없음.

** 한국 재벌 급 수집가가 두 세명 있다는데 신분을 모릅니다.

** 오 병윤씨가 알고 있는 손 큰 수집가 김 모씨. 사망 후 부인이 소장.

** 문위 5문 10월 9일자 사용필 故 송 부종 소유

** 김 갑식씨는 구한국에 대하여 잘 모릅니다. 故 김 요치 작품을 헐값에 처분!

 

(오 지연 님께 다시 한 번 더 감사드립니다. 이 부분에 대한 문의는 오 지연 님에게 이메일(33odol@naver.com)로 하시면 되겠습니다. 필자 이 영)